현경 가입리에 묘소와 신도비 존재…문화·관광자원 활용해야
임진왜란 당시 화차(火車)를 발명해 조선군 승리를 이끈 ‘망암 변이중 선생’의 후손이 무안군에 소재한 묘소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무안군 홈페이지에 제안했다. 이 후손은 수년 전 이러한 내용을 무안군에 건의했지만 지금까지 묵묵부답이라고 섭섭해했다.
무안군청 홈페이지 ‘군수에게 바란다’ 코너엔 자신을 망암 변이중 선생의 15대 후손이라고 밝힌 A씨가 무안군에 섭섭함을 드러내는 글을 올렸다.
A씨는 “무안군청 관광과에 ‘무안군 발전 계획서’라는 글을 2년여 전 올린바 있는데 지금까지 묵묵부답이어서 글을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가 첨부한 ‘무안군 발전 계획서’엔 “무안군 현경면 가입리 산 45번지에 망암 선생이 400년 넘게 모셔져 있는데도 국민들이 이를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무안군 에서는 너무도 오랫동안 그 문화적 가치를 방치하고 문중만의 선조로 축소하고 있다는 것은 무안군의 커다란 손실이며 그분의 업적에 비해 형편없이 소외되어 있는 것이 부끄러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위상에 어울리도록 관광 안내도 및 도로 안내 표지판과 도로명에 표시해 그분의 업적을 기렸으면 한다”면서 “망암 선생의 업적이 세간에 회자 되는 것을 보고 싶은 후손으로서 임무를 느껴 제안하게 됐다”고 밝혔다.
망암 선생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전라도 소모어사로 병마·군기를 수습하고 양천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직접 발명한 화차 300량 중 40량을 권율 장군에게 주어 행주대첩 승리를 견인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300명의 조선군이 3만명의 왜군을 물리친 행주대첩의 원동력이 바로 망암 선생이 직접 발명한 최신식 화차에 있었다.
1546년 장성에서 태어나 66세(1611년)에 장성에서 생을 마친 망암 선생은 장성에 안장됐다가 몇 해 후 아들에 의해 화해롱주(花海弄珠: 게가 구슬을 희롱하는 명당)로 알려진 현경면 가입리로 이장됐다. 그가 전라도 소모어사로 일할 때 봐둔 명당으로 아들에게 이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A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화차 300량과 총통 12정을 제작해 왜군을 물리친 1등 공신이 망암 선생”이라면서 “무안군에서 최소한 관광 안내 표지판이나 이정표라도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글을 썼다”고 밝혔다.
실제 무안군은 망암 선생과 관련된 어떠한 시설이나 지원을 지금까지 한 바 없다. 반면 몽탄면 이산리에 있는 금남 최부 묘소는 무안군이 안내표지판 등을 설치했다. 중국 3대 기행문 중 하나인 ‘표해록’을 저술한 금남 선생은 고향이 나주지만 무안에 묘소가 있다.
김원중 무안군의원도 신문 기고를 통해 망암 선생의 묘소를 관광자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 의원은 “망암 선생 묘소는 바다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묘지 앞에 화차공원을 만들고 바닷가에 전망 쉼터를 만들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무안군 관계자는 “망암 선생과 관련된 과거 제안서가 확인되지 않는다”면서 “망암 선생 묘소를 향토문화유산으로 신청해 달라고 후손들에게 요청했다. 그래야 정비·지원할 근거가 생긴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