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군, 봉대산성 발굴 정밀조사 중…복원 위해 국비 100억원 요청
이순신 장군이 올라 주변 형세를 살폈던 봉대산성에서 후백제 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인장이 전남에서 최초로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무안군에 따르면 정밀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무안군 해제면 봉대산성에서 후백제 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인장이 발견됐다. ‘현산호력인(賢山扈力印)’이라고 쓰여진 청동인장은 전남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된 청동인장으로 사료가치가 높다.
국가 왕실에서 제작하고 관리했던 인장(印章)은 청동 재질로 가로세로 길이 3.5cm로, 정사각형이며 윗면에 끈을 매달 수 있는 손잡이를 갖춘 주문방인(朱文方印)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인면(印面)에는 ‘賢山扈力印’을 전서체로 돋을새김했는데 인문(印文) 중 ‘호(扈)’자는 왕건이 후백제 견휜 세력 공략 과정 중 압해도 일원에서 능창(일명 수달 장군)을 잡는데 공헌한 호의(扈義)장군과 관련된 결정적 단서로 해석된다.
고려 태조왕건 세력의 호의 장군과 후백제 견훤 세력의 수달 장군의 충돌을 추리할 수도 있는 중요한 사료로 향후 봉대산성 국가 사적 지정에 결정적 역할을 할 주요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또 발굴조사 과정에선 기와편과 토기편, 철제무기 제작 도구도 출토됐다.
봉대산성은 2005년 2월 웰빙 해제 푸른숲가꾸기 사업 도중 나무를 심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무안반도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돌로 쌓은 성벽은 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유력하게 추정되고 있다. 산 정상에선 서해 칠산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군사적 요충지다. 서해와 남해 사이의 신안, 무안, 함평, 영광군 등을 지키기 위해 쌓았다.
성벽 길이는 430m, 너비는 5m, 둘레는 775m, 면적은 6587㎡이며 삼각형 모양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의 부분적 특징은 고구려 성곽에서 볼 수 있는 기법들도 적지 않게 사용됐다. 백제(웅진성 시기) 때 처음으로 성을 쌓았지만 지금의 모습은 통일신라시기에 지어진 석성 형태로 고려시대까지 쓰여졌다는 게 학계의 시각이다.
통일신라시대 석축 산성 가운데 석재의 가공에서부터 성벽의 축조까지 최고의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다. 성돌을 받치는 구실을 하는 지대석을 지면 위에 놓고, 규격화한 성돌을 사용해 성벽을 쌓는 형식은 1300년을 버틸 만큼 구조와 안정성 면에서 뛰어난 산성으로 평가된다.
특히 난중일기엔 무안현을 찾은 이순신 장군이 봉대산성에 올라 형세를 살폈다는 기록이 나옴에 따라 조선시대에도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병신년(1596년) 9월9일(10월29일) 맑음」
“일찍 일어나서 임치첨사 홍견을 불러 적을 방비할 대책을 물었다. 아침식사를 한 뒤에 뒷성(봉대산성)으로 올라가 형세를 살펴보고 동산원으로 돌아왔다.”
무안군은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는 봉대산성을 복원하기 위해 올해 6월부터 내년 2월까지 정밀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다.
김산 무안군수는 11월 초 서삼석 국회의원과 신정훈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만나 복원, 정비 예산 100억원을 국고로 지원해 줄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김산 무안군수는 “봉대산성은 고대 석축산성에 대한 조사가 전무한 전남 서남해안 지역의 고대사를 밝히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정밀조사를 통해 산성의 역사와 실체를 밝히고 최종적으로는 복원, 정비해 후대에 남길 예정”이라고 말했다.